배들에겐 '생명의 불빛'-진도 하조도 등대 배가 항상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비춰줘야 사진 설명) 1. 산 구릉에서 내려다본 하조도 등대. 앞 바다는 목포, 제주도, 인천으로 가는 분기점으로 여객선, 화물선과 멸치잡이 어선이 북새통을 이룬다. 하조도 어류포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4km 가면 나온다. 2. 창유리 마을에서 만난 하조도 사람들. 60년대만 해도 이곳 초등학교 학생수만 1500~1600명으로 섬이 복잡했는데 지금은 조도 인구 전체가 1500명 정도밖에 안 된다고 안타까워 한다. "우리는 집배원들한테 제일 미안해요. '섬 끄트머리'가 주소잖아요." 먼지 '풀풀' 날리며 간다. 마을과 떨어질수록 길은 벼랑이다. 벼랑길 따라 '덜컹덜컹' 등대 가는 길. 섬 속에 '섬'이 있다. 진도 조도면 하조도 등대(하조도 항로표지관리소). 섬 동쪽 끝 바다가 훤하다. 조도는 크고 작은 150개 섬이 '새떼'처럼 모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하조도는 그 새떼의 '어미새'다. 등대는 어미새의 눈. 바다에서 눈을 떼본 적이 없다. 제국주의 뱃길로 시작된 등대 전국의 등대들이 속속들이 '회년'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 등대가 첫 불을 밝힌 지 100년을 넘어섰다. 하조도 등대 주경신(58) 소장은 "모든 면에서 새롭게 시작할 때"라고 말한다. <1909년 2월: 조선총독부 체신국 하조도등대 초점등>. 사무실에 걸린 하조도 등대 연혁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 등대 건설은 '제국주의 뱃길'과 함께 했다. 일본은 등대 건립을 촉구하는 외교문서를 보내왔다. 러시아 영국 등 열강들도 이를 독촉했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바다는 유일한 통로였고 등대는 우리나라 지형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배들에겐 필수였다. 이 땅 등대의 첫 임무가 나라를 넘보는 열강들의 길잡이 역할이었던 것이다. "여기가 분기점이라 중요한 지점이에요. 목포, 제주도, 인천으로 가는 삼거리죠." 등대가 바다의 신호등인 셈. 제주도를 오가는 화물선이 밤낮으로 드나든다. 예전에 비해 그 수가 크게 줄었지만 목포, 진도에서 나온 꽃게잡이, 멸치잡이 어선 불빛이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등대를 단순히 배 안전을 위한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배 운행비용과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도 커요." 하조도 등대 초광은 10초 1섬광. 가사도 등대는 15초에 1섬광. 10초마다, 15초마다 한번씩 불을 밝혀주는 것이다. 배들은 이 초광을 보고 어느 등대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파악으로 가장 짧은 거리로 이동할 수 있는 '경제적인 항로'를 택하는 것이다. 등대의 이러한 역할은 등대의 수입과 연결된다. 소형어선을 제외한 외국배, 화물선, 여객선으로부터 등대 이용료를 걷어들이는 것. 등대가 알려주는 '사랑법' "등대지기는 항상 가족사진을 지니고 있어요. 근무지 바뀌어 짐 쌀 때도 가족사진 먼저 챙기죠. 도착해서도 책상에 가족사진 먼저 올려놓고요." 등대 일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초등학교 2학년이던 큰딸이 어느새 시집을 갔다. 경력 20년, 주 소장은 가족들과 함께 지낸 날보다 그렇지 못한 날이 훨씬 많다. 늘 그립다. 미안한 마음에 큰 소리 한번 쳐 보지 못했다 한다. "경남 통영의 홍도 등대로 발령 받았는데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짐 쌌다가 풀고 그랬죠. 가족들 목소리라도 들으면 괜찮았을 텐데 그 때는 전화도 안됐거든요." 모든 게 열악했다. 시설도 그랬고, 여객선이 다니지 않아 물자 보급선을 이용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갔다. "그렇게 2년 지내니 앞이 보이데요. 익숙해지고 정든 거죠." 여기저기에 핀 민들레가, 막 부화한 새끼 갈매기가 그제서야 보였단다. 일상업무 외 신경 쓸 일도 늘어났고 봐야 할 책도 많았다. 주 소장이 말하는 '등대 사랑법'이 있다. 등대처럼 사랑하면 연애도, 인간관계도 문제없다는 것. "등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뭔지 알아요? 안전성이에요. 한순간이라도 불빛이 꺼지면 안되잖아요. 배가 항상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비춰줘야 해요." 변함없는 모습으로 믿음직스러워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등대의 반사경에서 배우는 사랑법이 있다. "등대 불빛은 바로 비춰지는 게 아녀요. 반사경으로 불빛을 모아 쏘는 거예요. 그래야 불빛이 퍼지지 않고 멀리 갈 수 있는 거죠. 빛을 모으듯 마음을 먼저 모으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허허." 마음을 모아야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단다, 꾸준할 수 있단다. 그는 또 사람들은 자신만의 빛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작은배들에게 등대는 그야말로 생명이에요. 큰배들이야 레이저 장비가 있어 자체적으로 위치 파악이 가능하지만 작은배들은 등대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 지 판단을 못 내리죠.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도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소중한 등대 같은 불빛을 지니고 있는 거죠. 이게 등대만 바라보고 살다 얻은 내 철학이에요." 사람들과 함께 하는 등대로 "이제 등대만 외롭게 남겨둬서는 안돼요.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해요. 관광자원으로 입지도 넓히고 학생들도 찾아와 체험해 보고…. 등대가 해양문화로 거듭날 필요가 있죠." 한국 등대 100년이 넘었다. 그가 '새롭게 변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그 동안 등대는 여러 매체의 낭만적 묘사로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현실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하다. 그는 이제 낭만을 현실로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등대를 통해 해양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홍도 등대, 우도 등대는 숙소 한 동을 오는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어요. 영도 등대에서는 시낭송회가 열렸고요. 등대 모양도 범선 모양, 거북선 모양 등 다양해지고 있죠.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의 반영입니다." 　 글·사진=김창헌 <자유기고가> 출처 - 광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