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보물섬 "아~ 가고파라, 가파도!" 내년 3월 '가파도' 올레길 오픈 사진 설명) 1) 바다위의 가파도. 가파도(사진 위)와 제주 본섬을 연결해주는 삼영호는 36톤급 작은 여객선이다. 하루 세번 가파도와 제주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2) 가파도에서 바라본 송악산과 산방산 3) 가파도는 가릴게 없는 섬이다. 섬의 끝과 끝이 어디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그런 섬이다. 4)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가파도 하동 마을안길, 해맑은 가파도 어린이들의 하굣길, 섬 내에 유일한 가파도 수퍼는 간판인 '수퍼'와 어울리지 않는 정겨운 구멍가게다. 가파도 담수장, 가파도의 선구자 애국지사 김성숙 선생 동상 5) 김동옥 가파리장 6) 가파도 사람이 되고픈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7) 왼쪽 위부터 가파도 상동 할망당, 가파도 교회, 가파도 경로당, 해운사 해수관음보살상과 절 간판 8) 가파도엔 숲이 없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섬 안에 작은 숲이 있었지만 뗄감으로 하나 둘씩 벌목하면서 숲이 사라졌다. 가파도 주민들이 이제 그런 우를 범하지 않겠다며 곳곳에 소나무 묘목을 키우고 있다. 가파도에 키우는 이 섬의 희망인 셈이다. 오른쪽 아래 사진은 가파도 청보리밭. 뒤로 송악산과 산방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9) 가파도의 그늘. 가파도의 한 폐가가 을씨년 스럽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다시 닿길 기다리고 있는 집이다. 가파도 주민들은 지금 섬의 하늘을 어지럽게 얽혀놓은 전봇대도, 섬을 들락날락 거리는 저 유조차도, 아름다운 섬 해안선에 옥에 티가 되어버린 쓰레기 소각장도 모두 사라지게 할 야심찬 녹색 섬을 꿈꾸고 있다. 10) 가파초등학교. 전교생 11명의 가파초등학교는 이 섬의 희망이다. 11)고인돌. 가파도에는 선사시대 고인돌 군락이 섬 곳곳에서 가파도를 지키고 있다. 12) 보리 새순. 가파도 청보리밭에 겨울 찬바람을 이겨내고 보리 새순이 움트고 있다. "올레꾼 지친 몸과 마음 쉬어가게 할 진정한 제주의 보물섬" 날은 잔뜩 흐렸다. 간간히 비를 뿌렸고 바람도 세차다. 저 물살 센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사)제주올레가 우도에 이어 두 번째 제주 섬 올레길을 준비하고 있는 가파도로 답사를 떠나기로 한 날이지만 가파도는 뭍(?) 사람의 발길을 호락호락 허락하지 않을 태세다. ‘뭍이라지만 우리도 제주 본섬에 사는 섬사람인데….’ 혼잣말로 구시렁거려 본다.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모슬포항 여객선 대합실에서 지난 9일 만났다. 내년 3월께 '바람의 섬' 가파도에 제주올레의 새로운 코스를 열겠다는 서 이사장과의 동행이다. 미리 걸어보는 가파도 올레길인 셈이다. 가파도도 우리의 진심을 알아챘는지 뱃길은 생각만큼 텃세를 부리지 않았다. 가파도는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형제(兄第)처럼 제주 남쪽 송악산 앞 바다 위에 마라도와 나란히 앉은 섬이다. 그러나 마라도가 TV브라운관 속의 스타급 연예인이라며 가파도는 시골뜨기 아이에 다름 아니다. 120여가구에 주민 300여명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섬이다. 마라도가 수십여 대의 최신식 골프카와 즐비한 자장면 집, 대기업 프렌차이즈 편의점으로 길들여질 동안 가파도는 다행히도 개발에서 소외되어온 덕택이랄까. 아직 가파도는 고립된 섬을 지켜온 고인돌 군(群)처럼 우직하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한 섬이다. 더욱 제주 다운, 제주의 촌스러움을 지키고 있는 그런 섬이다. 그래서 제주의 진짜 보물을 찾아 온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아 놓기에 딱 좋은 섬이다. 슬로우시티로 이만한 섬이 또 있을까. 가파도는 가릴게 없는 섬이다. 빙떡의 메밀 전을 평평히 펼쳐놓은 것처럼 가파도는 섬 어디에서도 끝과 끝의 조망이 가능하다. 그뿐인가. 한라산과 송악산, 산방산, 단산, 고근산, 군산 등 제주의 6개 산을 모두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제주 땅에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상동에서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 한가운데의 길은 그대로 올레길이다. 겨울 찬바람을 이겨낸 보리 새순이 차가운 땅을 뚫고 저마다 고개를 내밀었다. 올 봄 가파도 청보리 축제에서 사람들을 취하게 했던 보리가 내년 봄을 기약하며 다시 새 생명을 움트고 있다. 반농반어의 삶을 살아가는 가파도 사람들의 삶은 억척스럽다. 아침 일찍 밭일을 돌아보고 바다에 들어가는 것이 가파도와 같은 섬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나 밭일 보단 바닷일이 주업인 까닭에 농사에 공을 들이기 어려운 것이 아직도 보리를 심는 주된 이유다. 그만큼 보리농사가 다른 농사에 비해 손이 덜 들기 때문이란다. 보리 새순이 자라나는 밭 한가운데로 커다란 돌덩이들이 군데군데 군락을 이룬 모습이 보인다. 선사시대 이 외딴 섬에까지 흔적을 남긴 선인들의 무덤 ‘고인돌’이다. 섬 구석구석에 이같은 고인들 수십여기가 가파도를 지키고 있다. 지난 1970년대 한때 전국 부호마을 5위에 들 만큼 떵떵거렸다는 이 섬은 지금은 젊은이는 떠나고 주로 노인들만 남았다. 그래서 주민들의 눈가에 어딘지 모를 근심이 어려 있다. 그러나 아직 가파초등학교 교정엔 11명의 어린이들이 뛰어 놀고 있다. 가파도 마을 곳곳에 자라나는 소나무 묘목과 함께 가파도를 푸르게 할 희망의 상징인 셈이다. 가파도에 희망이 있다는 확신은 또 있었다. 김동옥 리장과 같은 건강한 리더가 마을을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가파도에서 나고 자라 공무원, 회사원, 사업 등 이것저것 할 것 없이 다 해봤다는 김동옥 리장은 이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가파도의 희망지기가 되겠단다. 김동옥 리장은 “가파도를 우도나 마라도처럼 만들지 않겠다”고 잘라 말한다. 통제되지 않을 만큼 넘쳐나는 관광객과 섬 안을 내달리는 숱한 자동차들로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는 섬은 언젠간 쇠락할 것이란 경고를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었다. 그는 또 “가파도를 가파도 답게 지켜나가는 것이 젊은 리장이 할 일”이라며 “가파도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잘 보존된 청정 제주의 녹색환경을 선물하면 주민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소득창출의 기회가 찾아 올 것”이라면서 “개발에 대한 욕심이 과하지 않으면 가파도는 분명 제주 제일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최근 제주도가 가파도를 탄소배출이 없는 ‘탄소 무배출’ 시범모델로 조성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가파도가 카본 프리 아일랜드(Carbon Free Island)의 최적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가파도 주민들의 기대는 컸다. 여기에다 국민적 브랜드가 되어 버린 ‘제주올레’ 가파도 길이 곧 열릴 것이란 소식에 주민들은 더없이 반겼다. 그린 아일랜드(Green Island)의 대표명사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대단했다. 이와 관련 서명숙 이사장도 “가파도는 사람도, 자연환경도 최고의 보물섬이 될 만한 섬”이라며 “지난여름 첫 가파도 방문에서 한 눈에 반해버린 섬이 가파도다. 제주의 어떤 섬 보다도 지속가능한 녹색성장이 가능한 곳이다. 전국의 올레꾼들에게 지친 몸과 마음을 섬에서 며칠씩 쉬어갈 수 있게 하는 그런 올레 코스와 프로그램을 주민들과 함께 곧 열겠다”고 말했다. 가파도를 빠져 나오는 길에 김동옥 리장은 우리 일행을 상동항에서 배웅하면서 “가파도 사람들은 모슬포항까지 가는 뱃길에 의자에 절대 앉지 않습니다. 의자에 앉아있으면 그 사람은 관광객이지 가파도 사람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뱃길에 평생 몸을 맡겨 왔으니 서있어도 앉은 거나 마찬가지란 뜻으로 들렸다. 다들 가파도 사람이 되고 팠던 모양이다. 여객선 삼영호가 집채만한 파도를 가르며 가파도에서 모슬포 항으로 약 20여분을 달려오는 동안 우리 일행은 의자에 앉지 않고 두 다리를 단단히 벌려 갑판위에 서 있었다. 서명숙 이사장이 유난히 안정된 자세로 서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때까지도 가파도 상동항에는 두 팔을 흔들며 배웅인사를 하는 마을사람들이 점점이 보였다. 아~ 가고파라, 가파도! 김봉현 기자 출처 - 제주의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