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배는 애터질게 없다' 자연에 순응한 항해 강진~여수 옹기로드 450km를 가다 사진 설명) 1. 9월 10일 오전 10시께 봉황호가 고흥반도 외나라도 나로우주센터 앞을 지나고 있다. 뒷쪽으로 보이는 세개의 철탑이 우주선 발사대가 있는 곳이다. 2. 맨 좌측부터 나로도 주민인 신종남, 박보균, 전옥난, 이두엽씨가 옛날 강진의 옹기배를 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3. 최희례 할머니는 고흥옹기를 팔러 다녔다. 바람이 크게 불면 쉬어가고, 바람이 전혀 없으면 기다렸다 바다와 바람에 의지하니 어느덧 여수... '힛도'는 지금도 '힛도' 셋째날 항해: 화전리 앞바다~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 염포해변 9월 13일 오후 6시 30분 봉황호는 고흥군 봉래면 축정리 나로도항으로 들어갔다. 지도에서 보면 나로도는 고흥반도의 동남쪽 끝지점에 있다. 지금은 고흥반도에서 다리를 두 개씩이나 놓아 이곳이 육지와 연결됐지만 예전에는 내륙과 연결되기가 어려운 곳이어서 대부분의 생필품 수급을 뱃길에 의존했다. 축정리 해안에는 장이 크게 섰고, 이 일대를 강진옹기배가 수시로 드나들었다. 　 나로항에 닻을 내리고 하선했다. 칠량 봉황마을에서 배에 오른지 30여 시간만에 발을 내딛는 육지다. 　 축정리는 규모가 큰 면소재지 였다. 이곳에서 뱃길로 산을 하나 돌면 나로우주센터가 있고, 가까운 부두에서는 하루에 두 번씩 거문도행 쾌속선이 출발하고 있었다. 특히 이 일대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지역이라 유람선이 정박해 있었다. 부두에 내려 작은 돗자리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는 주민들을 만났다. 주민들은 신종남(75), 박보균(73), 전옥난(여.72), 이두엽(여.72)씨였다. 여수가 고향인 전옥난씨를 제외하고 모두 이곳 축정리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주민들은 "옹기배가 축정장은 물론 건너편 내발 등에도 내집 드나들듯 댕겨갔다"고 했다. 내발은 고흥군 도화면에 속해 있는 마을이다. 돛배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배에 올라가 옹기를 고르고, 값을 치렀다. 강진의 옹기 장사들은 먼 마을까지 옹기를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옹기가 필요한 사람들은 직접 이곳 축정장까지 나와 옹기를 구입해 가곤 했다. 　 축정항에는 예전에 소주공장이 있었다. 이곳에서는 소주와 막걸리, 약주를 만들어 팔았는데 병이 없던 시절에 옹기가 술병이었다. 소주공장에서는 강진에서 보통 200~300개씩 작은 옹기를 가져와 술병으로 사용했다. 　 강진산 옹기가 남해안 시장을 독점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설명했듯이 전남지역에만 20여개 지역에서 옹기를 생산했고, 가마터만 170여개가 발견되고 있다. 　 고흥에서는 모두 10개의 옹기가마터가 발견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럼 강진옹기와 고흥옹기는 어떤 점이 달랐을까. 　 축정리 주민들은 이곳에서 옛날 옹기점을 운영하던 '발바리' 할머니를 소개시켜 주었다. 옹기를 머리에 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습이 마치 발바리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꼬불꼬불한 언덕배기 도로를 올라가자 엄남마을이 나왔다. 비탈진 산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발바리 할머니(본명 최희례)는 성냥곽 처럼 작은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올해 85세였으나 건강했다. 　 발바리 할머니는 70년대 초반까지 고흥 옹기를 취급했다. 남편인 김학봉씨가 '고흥 어디쯤'에 있는 옹기굴(가마)에서 옹기를 만들었다. 남편이 옹기를 만들어 지게에 지고 엄남마을로 가져오면 할머니가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우리영감은 정말 법없이도 살 사람이었는디 빨리 죽더란 말이요. 옹기를 그렇게 잘 만들었능께. 죽으면 나는 꼭 영감옆으로 갈꺼요" 　 할머니는 40여년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눈물을 닦았다. 청승맞게 영감님을 다시 만나겠다니... 그 마음이 정겨웠다. 　 할머니와 만난 큰 목적이 있었다. 고흥옹기와 강진옹기중에 어느것이 더 좋더냐고 물어보았다. 할머니는 "강진것은 별것 아니였다"고 짐짓 깎아 내렸다. 　 "우리것은 색깔이 유난히 검은디 강진옹기는 놀장하고(색깔이 노란기미가 있고) 반듯하지(모양이 좋지) 않았제" 　 그날밤 봉황호로 돌아와 신연호 사공에게 강진옹기와 고흥옹기중에 어느것이 더 좋더냐고 슬쩍 물어 보았다."고흥옹기는 강진옹기 옆에도 못왔어. 모양이나 색깔이 한참 쳐졌제... 우리가 물건을 풀어놓으면 고흥옹기 장수들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슬슬 떠버렸어" 　 옹기를 생산한 지역 사람들은 이렇듯 서로 자부심을 가지며 상품경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면 강진은 대량생산 체계를 갖추고 뱃길이라는 거대한 유통망을 개척하고 있었다. 고흥을 비롯한 다른 지역은 소량으로 생산해서 육로를 통해 현지에 판매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었다는게 다른 점이었다. 그날밤 탐사대원들은 고흥 나로도가 고향인 한 대원의 부친이 가져온 병어와 전어를 푸짐하게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배는 본격적으로 여수항을 향해 출발했다. 바다는 너무 조용했다. 바다가 조용하다는 것은 바람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바람이 없는 것은 봉황호와 같은 풍선에게는 최악의 기상이었다. 　 이럴때 옹기배는 항해를 포기하고 바람이 일때까지 몇시간 또는 며칠씩 항포구에서 정박하며 바다가 일렁이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생긴말이 '옹기배는 애터질게 없다'란 말이 생겼다. 서두른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므로 그냥 편하게 기다린다는 뜻이다. 그러나 옹기로드탐사는 애터질 일이 많았다. 일정에 따라 항해를 해서 여수도착 시간을 맞춰야 하는 일종의 기획항해였기 때문이다. 　 인근의 코리아나호와 무전연락을 해서 배를 예인하기로 했다. 범선과 줄로 연결된 봉황호가 적당한 속도로 전진했다. 나로항 밖으로 나와 큰 산을 돌아서자 고흥우주센터가 왼쪽으로 지나갔다. 고흥반도의 최남단지역이다. 　 신연호 사공과 원희봉 조동무에 따르면 원래 옹기배 항로는 나로도 남쪽이 아니었다. 이곳으로 빠져나가면 곧바로 큰 바다로 접어들기 때문에 마을과 멀어졌다. 그래서 옛날 옹기배는 축정리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 사양도를 좌측에 두고 동일면 봉영리와 봉래면 신금리 사이 지금의 나로2대교를 지나 동쪽으로 빠져나가던지, 조금 더 북향을 한 다음 시호도쪽에서 지금의 나로1대교를 지나 여기저기 마을에서 옹기를 팔았다. 이 일대는 작은섬들이 점 처럼 박혀있는 곳이다. 　 봉황호가 큰 바다로 들어서고 있었다. 남쪽으로는 섬하나 보이지 않은 남해바다가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순천만을 끼고 있는 여자만이 아스라히 보였다. 고속엔진을 탑재한 배들이 하얀물살을 내며 이리저리 지나 다녔다. 　 바람은 조용한데다 조류는 앞쪽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조류가 힘잃은 배를 다시 나로도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후진항해였다. 이럴때 사공은 지그제그 항해라고 해서 배가 넓은 바다를 갈지자(之)로 나아가게 했다. 돛에 조금이라도 바람을 받게 해서 동력을 얻기 위해서였다. 배는 3시간 이상 그렇게 느릿느릿 갈지자 항해를 계속했다. 　 이번에 복원된 옹기운반선 '봉황호'는 일종의 개량 한선이다. 우리나라 전통한선은 배의 고물과 이물이 직선으로 이뤄졌고 배의 바닥은 평저선이라고 해서 평평하다. 지난해 복원된 온누비호가 그런 형태다. 　 옹기배는 190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조선기술이 들어와 우리나라 전통한선과 접목된 형태를 하고 있다. 배의 고물은 직선이지만 이물은 뾰쪽한 형태를 하고 있다. 배의 바닥 역시 나선형으로 둥근형태를 하고 있다. 　 앞이 뾰쪽하고 배 바닥이 나선형인 개량한선은 파도를 잘 이겨내고 물을 잘 헤쳐나간다. 반면에 배 바닥이 둥그렇기 때문에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이에반해 온누비호 같은 평저선은 파도에 약하지만 우리나라 연안항해에 안성마춤이다. 　 봉황호를 복원하고 옹기로드탐사를 주도하고 있는 곽유석 연구과장은 "외부에서 유입된 문화도 100년이 지나면 전통으로 본다. 봉황호는 개량식 조선기술이 도입된 것이지만 100년 이상을 유지온 것이기 때문에 전통기술이나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봉황호는 여수 행정구역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도에서 보면 여수는 큰 바다를 안고 있다. 가막만이란 곳이다. 가막만은 여수반도, 고돌산반도, 돌산도로 둘러싸여 거대한 호수모양을 하고 있다. 　 봉황호는 가막만을 막고 있는 크고 작은 섬사이를 지나 큰 만으로 들어갔다. 예전에는 가막만 입구에 있는 여수시 화양면 안포리 힛도란 곳에서 물때를 기다리느라 옹기배가 쉬어갔다. 물때가 썰물일때면 가막만에서 엄청난 규모의 물을 쏟아내기 때문에 섬과 섬사이를 휘돌아 나오는 물쌀이 보통이 아니였다. 그래서 힛도에 배를 정박하고 물때가 들물이 되어서야 돛을 올리고 여수항으로 들어갔다. 　 원희봉 조동무는 멀리 서쪽을 가르키며 "저기가 힛도다"고 말했다. 힛도라니... 어떤 단어가 세월을 겪으며 변화된 것 같은데, 컴퓨터 한글 좌판에서 '힛도'를 타이핑 하니 자꾸 엉뚱한 영문이 나왔다. 　 9월 14일 오후 6시 배가 3박 예정지인 여수소호요트장에 닻을 내렸다. 배에 실은 옹기는 조용했지만 사람들은 많이 피곤해 있는 상태다. 봉황호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여수항에서 열리는 환영식에 참석하는 일정을 남겨놓고 있다. 주희춘 기자 출처 - 강진신문▼